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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희망가] 3cm 폐암 이겨낸 이수영 씨 체험담

기사승인 2016.09.14  00: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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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06월 건강다이제스트 풀향기호.

【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살 수 있다는 신념 앞에서는 암세포도 꼼짝 못합니다”

평생 담배도 피우지 않았던 사람. 나이 예순에도 하프마라톤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건강만큼은 자신 있었다는 사람.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폐암 진단을 받았던 사람.

부산에 사는 이수영 씨(69세)는 도무지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억울했다. 원망도 해봤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오히려 축복이 됐다며 고마워한다. 정확한 목표가 있는 삶, 확실한 절제가 있는 삶, 종교적 신앙심이 주는 평온한 삶을 선물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더 감사한 삶, 더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이수영 씨. 모두에게 불행인 암이 어떻게 그에게는 축복이 될 수 있었을까?

2009년 4월 20일 저녁

이수영 씨는 이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갑자기 손발이 저리고 허리가 아팠다. 등도 뻐근하고 다리도 저렸다. 뜨거운 물수건으로 찜질을 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숨도 못자고 밤새 통증과 씨름해야 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한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밤의 고통을 말했다. 한방으로 치료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증상을 들은 한의사는 “가까운 종합병원 신경외과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연세도 있고, 중풍이 올 가능성도 있다면서….

이 말을 듣자 덜컥 겁이 난 이수영 씨. 곧바로 사무실 근처 종합병원 신경외과에 갔다. 각종 검사를 했고, 검사를 마친 담당의사는 척추에 무리가 간 것 같다면서 며칠 입원할 것을 권했다.

“다행히 4일 정도 입원해 있으면서 치료를 받자 손발저림도 많이 좋아졌고, 다리저림도 말끔히 없어졌어요.”

그래서 퇴원을 하루 앞둔 전날이었다. 평소 안면이 있었던 병원장이 병실로 찾아왔다. 불편한 점은 없냐며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담당의한테 차트를 좀 보자고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한참 동안 차트를 살펴보더니 내과 소견이 있다면서 내과병동으로 옮겨 가슴 CT를 찍어보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도 저는 내일이면 퇴원한다는 들뜬 마음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CT를 찍었어요.”

하지만 그 다음날 상황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다시금 병실을 찾은 병원장이 보호자와의 면담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 뒤의 일은 지금도 한 장의 파노라마 같다. 부랴부랴 아내가 달려오고, 면담을 하고, 그리고 전해진 말은… CT상 오른쪽 폐에 약간의 염증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더 자세한 것은 좀 더 큰 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2009년 5월 1일, 흉부내과 교수실

별일 아닐 거라고, 오진일 거라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이수영 씨가 찾아간 곳은 서울에 있는 최고 병원 흉부내과였다. 그동안 찍은 CT와 MRI 등 각종 검사 결과도 CD에 담아 함께 가져갔다.

2009년 5월 1일 흉부내과 교수실. CD에 들어있던 사진을 본 담당교수는 바로 말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암이라고 했다. 폐암이라고 했다. 1기말에서 2기 초이며, 직경은 3cm 정도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은 수술을 할지, 안 할지는 좀 더 상세히 검사를 해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이럴 수도 있나 싶었다. 서울에 올라올 때만 해도 틀림없이 오진일 거라고 철썩 같이 믿었었다. 평소 담배도 피우지 않았던 그였다. 폐를 나쁘게 할 환경에서 생활한 적도 없었다. 더군다나 60대 초반까지 부산일보, 국제신문에서 주최하는 바다하프마라톤대회에 출전하는 등 누구보다 건강에는 자신 있었다. 그런데 폐암이라니…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담당교수는 “옛날에는 암이라고 하면 불치의 병으로 여겼는데 지금은 치료받고 잘 관리하면 나을 수 있는 병”이라며 “우선 수술을 할 수 있는지 여부부터 알아보자.”고 했다.

또다시 시작된 각종 검사. CT, 내시경, 피검사, 조직검사, PET까지…. 5일 동안 검사가 이어졌고, 그것이 끝났을 때 담당교수는 “축하한다.”고 했다. “다행히 암 덩어리가 그리 크지 않고, 폐암 중에서도 가장 순한 선암이며, 수술할 수 있는 부위에 암이 있어 선생님은 선택받은 사람”이라며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폐암 환자가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비율은 고작 12~15% 정도인데 그 안에 들어가니 축하할 일이라면서 수술날짜를 알려주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2009년 5월 11일 아침 7시경, 이수영 씨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2009년 5월 11일, 수술

수술은 잘 됐다고 했다. 그러나 눈을 떴을 때 코에는 인공호흡기가, 입에는 가래제거호스가, 옆구리에는 불순물 배출 호스 두 개가, 팔에는 링거병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무엇보다 숨쉬기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오른쪽 폐를 3분의 2나 잘라낸 때문이었다. 연신 기침은 나오고 숨은 가쁘고….

그 증상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다. 그런 몸으로 9일 후에는 퇴원을 했다.

“병원에서는 항암치료를 권했지만 내키지 않았어요. 나이도 많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너무 힘들어 하는 걸 많이 봤던 터여서 생각해보겠다며 병원문을 나섰어요.”

그런 그가 향한 곳은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한 요양병원이었다. 많은 암환자들이 건강을 회복한 산실로 알려져 있기도 했다.

2009년 5월 23일, 이수영 씨는 기관지확장제, 마약성 진통제, 가래제거제, 소화제, 변비약 등 한아름의 약을 안고 요양병원에 도착했다.

2009년 5월 23일, 요양병원

통증이 너무 심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몸, 심한 기침으로 거동조차 힘든 몸으로 도착한 요양병원. 하지만 요양병원에서의 생활은 많이 낯설었다. 절제된 생활을 해야 했고, 자연 그대로의 음식을 먹어야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는 이수영 씨. 무엇보다 하루 세 끼 제공되는 식사는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깔깔한 현미밥에 간기가 거의 없는 싱거운 반찬, 매일매일 생야채, 멸치 꼬랑지도 안 들어간 밍밍한 된장국… 이 모두가 너무도 입맛에 맞지 않는 메뉴였어요.”

그러니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몸도 허약한데 먹지도 못하니 이러다 더 안 좋아지는 것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잘못 온 게 아닐까 후회도 했어요.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겠어요?”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흘렀다. 수술한 부위의 통증은 여전했다. 식사를 제대로 못하니 점점 더 몸 상태는 나빠져갔다.

“5일째 되던 날 이래선 안 되겠다 싶더군요. 정말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픈 몸을 이끌고 바깥으로 나갔어요.”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살려면 움직여야 한다고 권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음뿐이었다.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50m 걷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계속했다. 그 다음날에는 조금 더 가서 표시를 했고, 그 다음 날에는 표시해둔 지점보다 더 많이 걸었다. 그렇게 100m, 200m, 500m를 걷게 되면서 서서히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렇게 맛없던 음식도 꿀맛 같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산에 가고, 아침 먹고 산에 가고, 점심 먹고 산에 가고, 저녁 먹고 산에 가고…. 하루 4번 산에 올랐다.

그런 덕분이었을까? 1개월 남짓 지났을 때 그의 몸에는 서서히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숨찬 증세도 한결 견딜 만했고, 기침도 잦아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모두가 권하는 약을 끊어볼 결심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꺼번에 끊지는 못하고 하루에 3회 먹던 것을 2회로 줄여서 5일을 해보고, 그래서 괜찮으면 하루에 1회로 줄여서 또 5일을 해보고…그런 식으로 서서히 끊기 시작하여 7월 초에는 모든 약을 완전히 끊어버렸어요.”

그 대신 현미밥과 무공해 야채 식단을 철두철미하게 지켰고, 운동은 목숨 걸고 실천했다. 하루 20~26km는 반드시 걸었다고 한다. 요양병원 주위에 있는 800m 이상의 산들은 좋은 걷기 코스가 돼 주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이수영 씨는 비로소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은 가볍고 경쾌했다.

2013년 4월에 만난 건강인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이수영 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얼마 전 수술한 병원에 가서 X-레이 검사, 피검사 등 각종 검사 결과 기관지나 폐 부위, 기타 수술 부위 등도 깨끗이 완쾌되어 이제 정기적인 체크만 받으라고 하더군요.”

이 모든 것이 “하루하루의 생활이 달라진 때문이고, 또 하루하루의 마음가짐도 변화된 때문”이라고 믿고 있는 이수영 씨. 지금도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던 요양병원에서의 생활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에게 새생명을 주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목숨 걸고 현미식을 하고 산에 오른다. 2013년 4월 현재 그의 일상을 살짝 엿보자.

이수영 씨가 건강을 지키기 위해 실천하는 것들

◑ 일주일에 5일 산에 가기

아침 일찍 산에 오른다. 일주일에 5회는 반드시 산에 간다. 그렇게 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건 큰 기쁨이다.

이제는 산에 오르면 솔잎 사이의 바람결도 느끼게 되고, 진달래, 개나리꽃의 아름다움도 느끼게 되었다. 요즘은 생강나무, 산수유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있다. 늘 변화하는 산의 모습에서 강한 생명력을 얻는다.

◑ 오곡밥 아닌 오곡밥 먹기

밥은 현미+현미찹쌀+검은콩+율무+팥+찰수수+차조 등을 섞어서 오곡밥 아닌 오곡밥을 먹는다. 소량을 먹는다. 먹을 때는 되도록 꼭꼭 씹어 넘긴다.

◑ 반찬은 오색이 있는 야채 중심으로~

빨간 것- 피망, 검은 것- 검은콩·다시마·김, 흰 것- 도라지·양파·마늘, 파란 것- 시금치·상추, 녹황색- 당근·고구마 등 가능하면 오색으로 맞춰 먹는다.

소금기는 줄여서 먹고 기름에 튀겨 먹는 것도 자제한다. 되도록 생채식을 하고 다시마는 살짝 데쳐 먹는 식이다.

그런 반면 육류는 일절 입에도 안 댄다. 입에 착착 감기는 그 맛을 알기 때문에 아예 먹지 말자고 생각한다. 한 번 유혹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아서다. 그 대신 흰살 생선은 조금 먹는 편이다.

◑ 주열기 활용하기

자기 전에 집중적으로 열을 피부 안으로 밀어넣는다. 암세포는 열에 약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종종 뻐근하고 숨이 찬 증상이 있다. 등을 15cm나 절개했으니 당연할 것이다. 날씨가 안 좋으면 수술 부위가 뻐근하고 아픈데 이럴 때 주열기를 활용하면 통증이 줄어든다.

◑ 종교적 신앙심도 큰 힘

처음에는 자신의 의지로 암을 극복한 줄 았았다는 이수영 씨. 그런데 알고 보니 주위의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기도해준 덕분이었다. 가깝게는 아내의 한결같은 보살핌이 있었고, 또 가족들의 희생도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족과 주위의 기도와 염려 덕분에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종교적 신앙심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든든한 위안이 되어준다고 한다.

오늘도 아침 일찍 산에 오르고 현미식을 하고 절제된 생활을 하면서 암의 흔적을 지워나가고 있는 이수영 씨.

69세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피부는 매끈하고, 온몸에서는 생기가 넘친다. 그런 그가 지난 4년의 경험을 통해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단다.

첫째, 나는 꼭 살아야 한다는 정확한 목표를 가질 것.

둘째, 주위의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절제가 있을 것.

셋째, 종교적 신앙심을 가질 것.

이 세 가지 덕목은 오늘날 그가 건강한 몸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게 해준 자양분이 됐다고 한다. 그래서 혹시 지금 이 시간, 암이라는 병마와 생명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다면 ‘부디 나는 살 수 있다.’는 희망의 끈만은 절대로 놓지 말 것을 신신당부한다. 기껏해야 5cm, 혹은 8cm 크기의 암에게 굴복 당하는 건 억울한 일이라며, 반드시 극복할 수 있고, 극복 대상으로 삼을 것을 거듭 당부한다.

이은혜 kunkang1983@naver.com

<저작권자 © 건강다이제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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