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어트하려면 먹는 횟수부터 줄여보세요”
【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사진 | 가천대 길병원 제공】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까 일단 먹고 생각한다. 먹는 게 남는 거라고 하니까 일단 먹는 걸 최우선으로 둔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비만 전문가가 있다. 국내 의사로는 최초로 아시아-오세아니아비만학회 회장으로 활약 중인 가천대 길병원 가정의학과 김경곤 교수다.
먹을 게 넘쳐나고 있음에도 먹는 게 남는 거고, 이미 배가 많이 나왔음에도 일단 먹고 보느라 38.4%라는 충격적인 수치를 찍었다. 대한비만학회의 ‘2023 비만 팩트시트’에 의하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성인 인구의 38.4%가 비만이다. 우리가 그토록 외쳤던 먹는 게 남긴 것은 ‘비만 해결’이라는 숙제임이 분명하다. 비만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인의 노력과 함께 비만을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경곤 교수에게 현실적인 비만 해결법을 들어 봤다.
우리나라 비만의 현주소
‘내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닐까?’ 2013년 김경곤 교수는 호주 연수 중에 이런 생각을 했다. 2000년대 초반 세브란스병원에서 전임의를 할 때부터 비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김경곤 교수였다. 앞으로 한국도 비만 환자가 미국, 유럽, 호주 등처럼 많아질 거라고 예상해서 선택한 길이었다.
하지만 호주에서 외래 진료를 참관하면서 많이 놀랐다. 한국과 달리 200kg이 넘는 비만 환자가 매우 흔했다. 인슐린을 100단위 이상으로 쓰는 사람도 처음 봤다.
김경곤 교수는 “호주에 가서 심각한 비만 환자를 많이 만나고 나니 우리나라에 얼마나 비만 환자가 적은지 알 수 있었다.”며 “당시에는 환자도 별로 없는데 비만 연구를 계속하는 게 맞을지 의구심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한국의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너도나도 비만행 급행열차에 올라타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성인 남자 2명 중 1명(49.2%)은 비만이다. 최근 10년간 모든 연령대에서 비만 유병률과 복부비만 유병률이 증가했다.
비만은 정도에 따라 3단계로 구분하는데 동반 질환의 위험도가 가장 높은 단계가 3단계 비만이다. 그런데 3단계 비만이 10년 전에 비해 2.9배 늘었다. 젊은 층의 3단계 비만 유병률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김경곤 교수는 “젊을 때부터 비만이면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훨씬 더 빠른 시기에 합병증이 생기고, 합병증의 진행도 무척 빠르다.”고 설명한다. 비만과 연관 있는 질환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다. 비만이 있으면 뇌경색, 협심증, 심근경색 등과 같은 심뇌혈관 질환을 비롯해 식도암, 대장암, 위암, 간암, 췌장암, 신장암, 유방암 등과 같은 각종 암, 지방간, 담석, 수면무호흡증, 천식, 고혈압, 2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통풍, 골관절염, 우울증 등이 잘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먹는 게 남긴 비만
한국은 매우 빠른 시간에 너도나도 비만을 걱정해야 하는 나라가 됐다. 한국뿐 아니라 지금 전 세계는 비만과의 전쟁 중이다. 비만은 생활습관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 당연히 가장 문제는 많이, 자주 먹는 습관이다. 그럼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많이 먹게 됐을까?
김경곤 교수는 “시대에 맞지 않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과 같은 사회 분위기가 비만을 조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먹을 게 부족하던 시절에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 맞았다. 먹는 게 남는 거였고 중요했다. 이제는 끼니를 거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인생의 기쁨과 즐거움이 맛있는 것을 먹는 일뿐이라면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예전에는 국내 여행이나 해외여행을 가면 역사적인 장소, 경치 좋은 곳, 종교적 의미가 있는 곳을 주로 찾았는데 지금은 맛집 투어가 목표인 경우가 많다.
김경곤 교수는 “맛있는 음식을 인생의 우선순위로 꼽는 사회는 비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 김경곤 교수는 비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할 뿐 아니라 직접 유행하는 다이어트까지 다 해 본 후 그 지식과 경험을 통해 비만을 치료하는 의사다. |
맛있는 음식이 삶의 목표가 되는 사회 분위기는 성장기 아이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어렸을 때부터 영양은 적고 열량만 높은 음식에 최대한 노출시키지 말아야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사탕과 과자 같은 단 음식으로 아이를 달래고, 외식이나 배달 음식으로 보상을 해주고, 먹방 여행에 동참시킨다.
우리 세대를 위해, 미래 세대를 위해 먹을 것에 대한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먹는 게 유일한 기쁨이 아니라 여러 기쁨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다이어트 많이 해 본 의사가 추천하는 다이어트 비법
김경곤 교수는 지식과 경험을 겸비한 ‘다이어트 박사’다. 20년 동안 비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치료하면서 직접 다이어트도 해 봤다.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간헐적 단식, 열량 제한 다이어트 등 안 해 본 다이어트가 없다.
김경곤 교수는 “직접 해 봐야 환자와 대화가 잘 통하고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적어도 2주씩은 그동안 유행했던 다이어트를 시도해 봤다.”고 말한다.
다이어트 과정은 혹독했지만 얻는 것도 많았다. 수많은 다이어트를 거치면서 김경곤 교수는 다이어터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의사이자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의사가 됐다. 효과는 좋지만 금방 포기해 버리는 방법이 아니라 오래 해볼 만한 생활습관을 권했고 이는 다이어트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번번이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면 어떤 방법이 현실적일까요?” 김경곤 교수는 다음 2가지 생활습관을 추천한다.
첫째, 먹는 양이 아닌 먹는 횟수부터 줄인다.
하루에 열량이 있는 음식을 먹는 횟수를 3번 이하로 제한한다. 일종의 간헐적 단식이다. 흔히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먹는 양부터 줄이는데 몇 번 하다 보면 배가 고파서 무너지기 쉽다. 또 일단 먹기 시작하면 절제가 안 된다.
김경곤 교수는 “양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횟수로 접근하면 훨씬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며 “공복을 충분히 유지하면 그동안 혹사당했던 소화기관에 휴식을 주는 효과도 있다.”고 조언한다. 김경곤 교수도 아침을 안 먹고 점심과 저녁만 먹는데 그 중간에는 물이나 차 이외는 거의 먹지 않는다.
둘째, 단순당 섭취를 극도로 제한한다.
김경곤 교수는 평소 환자에게 완곡하게 말하는 편이다. 이런 김경곤 교수가 강력하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바로 단순당 섭취다. 단순당을 많이 섭취하면 우리 몸의 식욕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이 망가진다. 설탕이 많이 든 음식이 식욕을 촉진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꼭 단 음식을 먹어야겠다면 식사 전보다는 식사 후에 먹는 것이 낫다. 식사 전에 먹으면 식욕을 촉진해서 과식하기가 쉽다.
우리가 밖에서 사 먹는 음식에는 대부분 단순당이 들어 있다고 보면 된다. 맛있게 만들어야 잘 팔리기 때문이다. 내가 설탕을 푹푹 퍼서 넣지 않아도 파는 음식을 먹으면 나도 모르게 설탕을 먹게 된다. 그래서 단순당은 막연하게 줄이는 게 아니라 극도로 제한해야 하루 권장량 이하를 먹을 수 있다.
비만 명의 특명! 재밌는 운동을 찾아라!
죽어도 안 빠지는 살을 빼는 방법은 간단하다. 덜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이다. 하지만 운동만으로 살을 빼기는 매우 어렵다. 김경곤 교수는 “환자들에게 운동으로 살을 빼려면 매일 국가대표 선수촌의 선수들처럼 운동해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며 “다이어트에 성공하려면 운동보다는 먹는 것을 줄이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운동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해야 한다. 운동을 해야 죽어라 뺀 살이 다시 잘 안 찐다. 살이 잘 빠지는 몸으로 바뀐다. 또한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
김경곤 교수는 요가, 등산, 헬스, 달리기, 수영 등 다이어트에 좋다는 운동도 다 해 봤다. 그중에서 가장 하기 어려웠던 것은 헬스였다. 두 달을 못 버텼다. 그러면서 얻은 결론이 있다. 운동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하는 운동은 오래 못 갔다. 여러 운동을 거쳐 지금은 테니스에 정착한 상태다.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테니스를 치러 간다. 같이 치는 사람도 좋고, 실력도 늘어서 좋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재미있어서다.
우리가 놓치기 쉬운 운동의 효과가 한 가지 더 있다. 김경곤 교수는 “운동하는 시간에는 음식을 먹지 않아서 먹는 횟수를 줄이는 데도 좋다.”고 조언한다.
그동안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면 김경곤 교수의 20년 경험담을 믿고 3가지만큼은 꼭 따라 해보자. 하루 세 번만 먹기, 단순당 섭취 안 하기, 재밌는 운동하기로 가벼운 하루를 만들어 보자.
정유경 기자 kunkang198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