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7월호 52p
【건강다이제스트 | 파인힐병원 김진목 병원장】
지난 5월 말, 연세암병원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회전형 중입자 치료기로 간암과 췌장암 환자를 치료했다.
중입자 치료는 탄소 원자를 빛의 속도의 80%로 가속해 암세포에 쏘는 방식이다. 암세포 제거 능력이 기존 치료보다 2~3배 높은 데다 건강한 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만 파괴해 부작용도 적다.
회전형 중입자 치료기의 가동이 갖는 의미를 짚어본다.
▲ 사진=연세암병원 |
연세암병원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중입자 치료를 시작했다. 고정형 치료기 1대와 회전형 치료기 2대를 보유하고 있다.
치료기는 탄소 입자의 조사 각도에 따라 두 종류로 나뉜다. 수평으로 고정된 각도에서 조사하는 고정형 치료기는 좌측과 우측에서 입자선을 조사하기에 적절한 전립선암을 대상으로 했다.
그동안은 고정된 각도에서만 중입자를 쏠 수 있어 전립선암에만 적용됐는데, 지난 5월 말부터 회전형 치료기도 가동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암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일례로 간암이나 폐암처럼 주변에 다른 장기가 있거나, 장기가 움직여도 치료기가 회전해 가장 적합한 각도로 암세포를 타격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회전형 치료기가 가동됨으로써 혈액암을 제외한 대부분의 암 치료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회전형 중입자 치료의 의의
연세암병원은 2023년 4월부터 중입자 치료를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에너지빔이 한 곳에서만 나오는 고정형 치료기 1대만 가동했다.
2024년 5월 28일부터는 회전형 중입자 치료기를 가동하면서 치료 가능한 암 종류도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회전형 중입자 치료기는 360도 방향에서 에너지빔이 나오며, 환자 치료시 최적의 방향을 선택해 에너지빔을 쏜다. 올해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회전형 중입자 치료기 1대가 추가 가동되면서 치료 적용 암종도 기존의 전립선암 단독에서 폐암, 간암 등 10여 개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중입자 치료기란?
중입자 치료는 탄소 원자를 가속해 만든 에너지빔을 환자 몸속 암세포에 정밀하게 조사해 사멸한다. 이를 위해 원자 가속기가 탄소 원자를 1초당 지구 5바퀴를 도는 빠르기(빛의 속도 80%)로 속력을 가해 치료기로 전달한다. 초당 10억 개의 탄소 원자가 정상 조직은 지나치고 3D 엑스레이로 설정한 좌표에 따라 정확하게 암세포에서만 터져 에너지를 발산하고 사라진다. 정상 조직은 보호하되 암세포의 사멸력은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는 2024년 5월부터 간암, 폐암 등에 적용되는 회전형 중입자 치료를 시작했다. (사진=연세암병원) |
연세암병원이 중입자 치료를 시작한 것은 전 세계에서 16번째지만, 국내에서는 처음이다. 고정형 치료기 1대와 회전형 치료기 2대까지 총 3대를 가동하면 연간 1000명 이상의 신규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는 지금까지 약 140명의 전립선암 환자를 치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 12회 스케줄로, 한 달 안에 끝마치는 식이었다. 중입자 치료 후 암세포의 크기는 크게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고, 전립선 특이항원(PSA) 수치도 크게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장 천공·출혈 같은 심각한 부작용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첫 치료 환자의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결과 암세포의 크기가 현저하게 감소하고, 전립선 특이항원(PSA) 수치는 7.9ng/㎖에서 0.01ng/㎖ 미만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환자가 치료기 위에 누워 있으면 2분 내외로 에너지빔이 들어가며, 작은 통증조차 없어 환자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 이익재 센터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 어떤 환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회전형 중입자 치료를 적용할 것인지 치료 프로토콜을 만들고 있다.”며 “일단 다른 장기에 암 전이가 있는 4기 환자는 제외하고, 암 위치상 수술이 어려운 환자가 대상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특히 암만 타깃으로 하고 정상 조직은 거의 손상시키지 않는 중입자 치료의 특성상 폐 기능, 간 기능이 떨어진 폐암, 간암 환자에게 유용한 치료 옵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폐암 환자 중 폐가 딱딱한 간질성 폐질환을 동반하면 수술이 어렵고, 방사선 치료를 시행하면 방사선 폐렴 발생의 위험이 커지는데, 이들에게 회전형 중입자 치료를 시행하면 폐를 최대한 보호하면서 ‘국소제어율(치료 받은 부위에 암이 재발하지 않는 확률)’은 높일 수 있다.
간질성 폐질환이 있는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가 회전형 중입자 치료를 받았을 때 방사선 폐렴 발생률과 생존율에서 차이가 없었다는 일본 군마대학병원의 연구가 있다.
간암 역시 간경변이 있는 상태라면 간 기능이 떨어져 있어 암 치료가 쉽지 않은데, 암만 타깃으로 사멸시키는 회전형 중입자 치료가 효과적일 수 있다. 일본 군마대학병원에서 치료한 간암 환자의 2년 국소제어율은 92.3%에 달했다. 일본 방사선의학 종합연구소 연구에서는 5년 국소제어율 81%를 기록했다.
악성암인 췌장암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병기가 진행돼 수술이 불가한 췌장암 환자의 경우 항암제와 중입자 치료를 병행했을 때 2년 국소제어율이 80%까지 향상됐다는 일본 방사선의학 종합연구소 결과가 있다.
얼굴 부위에 암이 생겨 수술이 어려운 두경부암에도 중입자 치료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익재 센터장은 “두경부암 중에서도 점막흑색종 또는 선양낭성암종 등의 경우 수술로 완전 절제가 어려운 경우가 많고 기존의 방사선 치료는 효과가 떨어진다.”며 “회전형 중입자 치료를 하면 3년 국소제어율과 생존율이 각각 80%, 75%에 달해 기존 치료 방법 대비 치료 성적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눈에 발생하는 맥락막 흑색종과 같은 난치암에서도 국소제어율이 90%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다.
뼈에 생기는 골육종암은 대표적인 난치암으로 항암치료 중에도 50%는 폐 전이가 발생하고 방사선 치료를 해도 수개월 내에 재발한다.
그런데 중입자 치료를 받은 척추골육종암 환자 48명의 5년 국소제어율이 79%, 5년 생존율이 52%로 기존 치료를 통한 생존율보다 2배 이상 높았다는 결과가 있다. 근육, 신경 등 연부조직에 발생한 골육종암 환자 61명의 3년 국소제어율과 생존율은 각각 84%, 88%에 달했다.
재발암에도 회전형 중입자 치료를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재발성 직장암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여럿 있다.
이익재 센터장은 “골반 안에 깊이 있는 직장암은 재수술이 어렵고, 이미 방사선 치료를 받아 추가 방사선 치료에 반응이 안 좋을 수 있다.”며 “회전형 중입자 치료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바야흐로 중입자 치료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아직은 고가의 치료비로 대중화의 길은 멀어 보이지만 암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옵션이 늘어난 점은 분명 기쁜 일일 것이다.
김진목 박사는 의학박사, 신경외과 전문의로 부산대병원 통합의학센터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파인힐병원 병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사)대한통합암학회 이사장, 마르퀴스후즈후 평생 공로상, 대한민국 숨은명의50에 선정되기도 했다. 주요 저서는 <통합암치료 쉽게 이해하기> <약이 필요없다> <위험한 의학 현명한 치료> 등이 있다.
김진목 파인힐병원 병원장 kunkang198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