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11월호 102p
【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에비뉴여성의원 강서점 김화정 원장(산부인과 전문의)】
완경(폐경)이 되었거나 완경을 앞둔 많은 여성이 질 건조증으로 인해 고민하고 있다.
질 건조증이 생긴 이후로 섹스를 거부해 남편과의 사이가 멀어졌다거나, 질염에 자주 걸려 삶의 질이 떨어졌다거나, 스트레스를 받아서 우울하다는 경우가 흔하다.
다른 완경기 증상과 달리 질 건조증은 생식기에 나타난 변화라서 쉬쉬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 남편에게도 말을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않는다. 이런 질 건조증은 도대체 왜 생기는 걸까?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수 있을까?
아내의 성욕을 뚝 떨어뜨리는 질 건조증, 그 해결책을 소개한다.
CASE 1. 남편에게 사과하고 싶은 아내 이야기
영화(가명·49세) 씨는 요즘 마음이 불편하다. 남편에게 미안해서다.
며칠 전 남편은 머뭇거리며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처음에는 화장품인 줄 알고 덥석 받았다. 그런데 러브젤이었다. 약국에서 사왔다고 했다. 수치스러움과 당혹감에 애먼 말이 튀어나왔다. 남편에게 러브젤을 사올 게 아니라 비뇨기과에 가서 발기부전이나 치료하라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 버렸다. 남편은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버렸고 그 후로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피하고 있다.
영화 씨는 남편이 러브젤을 사 온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영화 씨의 거부로 섹스를 안 한 지가 일 년이 넘었다. 일부러 거부한 건 아니었다. 예전과 달리 애액이 충분히 나오지 않는 바람에 아파서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남편에게 아프니까 빨리 끝내라고 말한 게 마지막 섹스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남편에게 미안하다. 한편으로는 러브젤을 사와서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빨리 사과를 해야 하는데 남편의 굳은 표정을 보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CASE 2. 아내의 비밀을 모른 척하는 남편 이야기
영국 씨(가명·44세)는 뜻밖의 단어를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 별생각 없이 아내의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려고 포털 사이트 창을 켰는데 최근 검색어가 ‘질 건조증’이었다. 처음 접하는 말이었지만 어떤 말인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4살 연상인 아내라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아내가 특별히 아픈 데도 없는데 약을 먹는 모습을 본 것도 같았다. 아내는 질 건조증 때문에 병원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몇 달 전,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내는 섹스를 안 하고 살면 기분이 어떨 거 같은지 물었다. 오래돼서 정확히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섹스를 안 해도 상관없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괜히 아내에게 부담을 준 것 같아서 마음에 걸렸다.
아내에게 아는 척을 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하지 않기로 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게 티를 안 내고 노력하는 아내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았다.
질 건조증으로 고통 받는 아내들
질 건조증은 보통 성관계를 할 때 애액 분비가 적은 상태를 말한다. 이런 증상은 완경(폐경)기 여성에게 흔하게 나타난다. 완경 이후에는 난소에서 여성의 질을 비롯한 생식기를 보호하는 여성호르몬이 분비되지 않는다. 그러면 질 점막의 탄력이 떨어지고 질벽이 얇아지며 애액의 분비량이 떨어지면서 질 속이 건조해진다.
질 건조증은 완경 이전의 여성에게도 종종 나타난다. 상대적으로 여성호르몬의 분비가 줄어드는 30대 중반 이후에도 질 건조증이 생길 수 있다. 이외에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질과 자궁 주변의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서 애액 분비가 줄어들기도 한다.
애액은 음경을 삽입할 때 마찰을 줄여주고 질의 산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질 건조증이 있으면 성교통, 외음부 따가움, 냉증 없는 가려움, 가벼운 마찰로 인한 출혈 등이 생길 수 있다. 질 건조증은 섹스리스의 흔한 원인이 된다. 삽입할 때 아프면 섹스에 거부감이 생기고 성욕도 떨어질 수 있다.
에비뉴여성의원 강서점 김화정 원장은 “30대 중·후반에 생기는 질 건조증은 성관계 시에만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지만 완경기 이후에 생기는 질 건조증은 점점 외음부 점막이 위축되어 평소에도 불편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성호르몬 치료의 득과 실
예전에 비해서 성관계를 할 때 질 안이 아프고 화끈거리거나 외음부가 부었다면 질 건조증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질이 건조하면 질의 면역력에도 이상이 생겼다는 의미다. 성관계 후에 질염이 잘 생긴다. 질 안이 건조하다는 것은 질 안으로 들어오는 세균, 바이러스 등을 막는 방어막이 허물어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한 번 질 안의 방어막이 무너지면 다시 좋아지기가 쉽지 않아서 질염이 계속 재발할 수 있다.
김화정 원장은 “질 건조증은 육안으로 외음부를 보고 진단할 수 있다.”며 “갱년기 혹은 완경 이후에 애액 분비선이 위축되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되면 우선 여성호르몬제를 사용해서 불편한 증상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성호르몬제는 먹는 약, 연고, 질정 등이 있다. 완경 초기에는 주로 먹는 호르몬제를 쓴다. 질 건조증을 비롯한 전반적인 완경기 증상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완경이 된 지 오래되었다면 연고, 질정으로 치료하는 것이 적합할 수 있다.
병원에서 호르몬 치료를 권유받으면 부작용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유방암, 혈중 지질 변화가 다소 증가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김화정 원장은 “먹는 호르몬제를 사용하면 보통 장기간 복용 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방암 검사, 혈액검사, 골반초음파 검사 등을 병행한다.”고 조언한다. 반면 완경이 된 지 오래 됐을 때 주로 사용하는 질정제와 연고제 치료는 혈중 호르몬 변화가 생기지 않아서 부작용에 대한 부담이 적다.
너무 불편해서 단기간(수개월)만 호르몬제를 먹는 경우는 부작용 위험이 적어서 유방암, 심혈관 질환, 자궁이나 난소 질환이 없는 경우라면 별도의 검사를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러한 호르몬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질 건조증이 완전히 치료되지는 않는다. 불편한 증상을 개선해 주는 치료이며, 불편함이 줄어들면 치료를 중단하면 된다.
질 건조증 해결책 3가지
질 건조증이 생기면 섹스리스로 이어지는 부부가 많다. 몇 번 시도하다가 아파서 섹스를 완전히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질 건조증이 있어도 부부가 서로 노력하면 충분히 사랑을 나눌 수 있다. 그 방법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전희 시간을 늘린다.
남편은 성급하게 삽입을 시도하지 말고 애액이 충분히 나올 수 있도록 전희 시간을 늘려야 한다. 오히려 전희를 오래 하면 아내의 만족도가 더 올라갈 수 있다. 삽입할 때 느끼지 못했던 오르가슴을 전희 때 하는 키스, 애무 등으로 느꼈다는 아내가 많기 때문이다. 전희 과정에서 오르가슴을 느끼면 남편이 삽입 섹스를 할 때 빨리 사정을 해도 아내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다.
둘째, 윤활제를 사용한다.
삽입할 때 흔히 러브젤이라고 하는 윤활제를 사용하면 마찰로 인한 통증이나 불쾌감을 줄일 수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윤활제는 대부분 수용성이며 물로 쉽게 씻어낼 수 있어서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그래도 피부에 닿는 거라서 걱정된다면 성분을 잘 확인하고 구매하도록 한다.
셋째, 정기적으로 섹스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
질 건조증으로 인한 성교통이 생기면 일단 섹스를 피하게 된다. 아프니까 지금은 안 하고 나중에 괜찮아졌을 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질 내부는 섹스를 안 하면 안 할수록 더 건조해지고 얇아진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섹스를 하는 것이 질의 노화를 더디게 하여 더 오랫동안 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만약 섹스를 거부할 정도로 불편하다면 전문의에게 진료와 상담을 받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을 추천한다.
김화정 원장은 에비뉴여성의원 강서점에서 여성 성형수술, 콘딜로마 진료, 미혼여성 검진 등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하이닥 상담의, 네이버 지식인 상담의 등으로 활동 중이다.
정유경 기자 kunkang1983@naver.com